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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아래 아나리팜의 미백찰옥수수 이야기

7월 중순, 치악산 아래 아나리팜에 드디어 올해 첫 미백찰옥수수 수확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이 날을 기다리며 한 계절 내내 땅과 하늘의 표정을 읽어가며 살았습니다. 전날 밤은 이상하게도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옥수수밭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듯했고, 흙 속에서 알알이 여문 옥수수들이 ‘이제 준비됐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해가 떠오르기 전, 새벽 안개가 농장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옥수수 줄기는 밤새 머금은 이슬을 반짝이며 햇살을 기다렸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차가운 물방울이 발목을 적셨습니다. 밭 사이를 걸으며 손으로 줄기를 잡아 ‘똑’ 하고 꺾으면, 껍질 속에서 고소하고 달큰한 향이 피어올랐습니다. 그 향은 농사꾼만이 알 수 있는, 한 계절의 시간과 노력이 응축된 냄새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나란히 서서 수확을 이어갔습니다. 어머니의 손길은 경험에서 나오는 속도와 섬세함이 있었고, 저는 그걸 맞추려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대화를 많이 하진 않았지만, 손끝의 리듬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올해는 알이 고르네”, “비가 더 왔으면 어쩔 뻔했니” 같은 짧은 말 속에, 그동안의 걱정과 안도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올해는 특히 기후의 변덕이 심했습니다. 봄철 이상저온과 갑작스러운 폭우, 장마철의 긴 흐림과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번갈아 찾아왔습니다. 하루 온도 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날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날씨는 미백찰옥수수의 알이 고르게 차오르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해충 방제도 쉽지 않았습니다. 잎을 갉아먹는 조명나방과 줄기를 파고드는 해충은 하루만 방심해도 밭을 망쳐놓을 수 있어, 거의 매일같이 밭을 돌며 살폈습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첫 수확의 기쁨은 더욱 값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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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미백찰옥수수를 수확 농민의현실벽을 느끼다

수확한 옥수수를 어디에, 어떻게 팔 것인가. 저는 처음엔 당연히 지역 주민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옥수수는 수확 후 24시간 안에 먹을 때 당도가 가장 높고 맛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근마켓에 판매 글을 올렸습니다. 사진을 찍고, 옥수수의 특징과 맛, 수확 이야기를 정성껏 적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은 농산물 판매가 불가하다는 정책 때문에 게시글이 삭제됐습니다.
“내가 내 손으로 농사지은 걸 내가 팔 수 없다니…” 하는 허탈함이 몰려왔습니다.

결국 원주시 농산물공판장으로 향했습니다. 새벽녘, 트럭에 옥수수를 싣고 길을 달렸습니다. 경매장에 도착해 출하 절차를 밟는 과정은 생각보다 빠르고 규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격표를 받아 들고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공급량이 많을 땐 가격이 급락했고, 정성껏 키운 옥수수가 헐값에 거래되는 현실이 참 쓰라렸습니다. 농부의 손길과 땀방울은 시장 가격 앞에서 숫자로만 환산됩니다.

단가

그 순간, 직거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다음 수확부터는 사전 예약과 직접 수령 방식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마을 주민, 지인, 그리고 저를 알고 있는 소비자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판매 방식입니다. 농부의 얼굴과 이야기를 알고 먹는 옥수수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정성’이 됩니다. 소비자도 단순히 가격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시간과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농사의 시작은 씨앗이지만, 끝은 유통입니다. 아무리 좋은 작물을 수확해도 소비자와의 연결고리가 약하면 그 가치는 절반밖에 전해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 경험을 계기로, 농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구조와 소비자가 제값을 주고도 만족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치악산 아래 아나리팜의 옥수수는 흙과 햇빛,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머금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하루하루 밭을 돌며 들인 발걸음과 농부의 땀이 스며 있습니다. 첫 수확은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농업이 가진 현실의 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벽을 조금씩 허물어 보고자 합니다. 더 나은 판매 방식, 더 많은 사람들과의 연결, 그리고 농촌이 지속가능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려 합니다.

오늘 수확한 옥수수는 언젠가 제 손을 거쳐, 누군가의 식탁 위에서 따뜻한 웃음을 만드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내일도 새벽 이슬을 맞으며 밭으로 나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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